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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랜토리노」
    영화노트/할리우드 2013. 2. 24. 14:33


    그랜 토리노 (2009)

    Gran Torino 
    9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출연
    클린트 이스트우드, 크리스토퍼 칼리, 비 뱅, 아니 허, 브라이언 할리
    정보
    범죄, 드라마 | 미국, 독일 | 116 분 | 2009-03-19
    글쓴이 평점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조금 더 오래 살아서 더 많은 영화를 만들어주었으면 합니다. 올해 여든이라는 나이이지만 그는 현역입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열렬한 공화당원이라고 합니다. 흔히들 하는 말이 있죠. 한국에는 진정한 보수주의자가 없다고. 보수주의자란 지켜야 할것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라면 사회에 꼭 남아야할 가치들에 대해 고민하고 그러한 것들을 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아닐까요.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사회에 남아야할 가치, 남겨야만 할 가치에 대해 영화로 이야기를 하려합니다.

     

    스포일러 있음

    [그랜토리노]는 선악의 이분법이 처음부터 명확한 이야기 입니다. 그러한 선악의 구분은 누가 짓느냐구요? 영화의 주인공인 코왈스키(클린트 이스트우드 분)가 짓습니다. 첫 씬에서 부터 그러한 것들이 나오는데요, 아내의 장례식장에 배꼽티를 입은 손녀와 장난을 치는 손자를 보고 코왈스키는 표정을 일그러뜨립니다. "그러면 안돼"라는 표정이죠.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코왈스키는 꼰대입니다. 고집스러운 가치가 있고 그것에 맞추지 못한다면 그것들을 배척하는 그런 인물이지요. 특히 그에게 있어 "젊은 것"들은 "악"에 가까운 존재들입니다. 젊은이를 보는 그의 표정들은 한결같죠. 하지만 옆집에 사는 흐멍족 젊은이인 타오와 슈는 점점 그에게 다른 존재가 되어 갑니다. 노인을 공경하고 일을 성실히 하는 타오와 슈. 코왈스키는 타오의 멘토가 됩니다. 일자리도 구해주고, 공구도 사주는 등의 선의를 베풀죠. 손자 손녀에게는 보여주지 않았던 행동을 합니다.

     

    그 대척점에 있는 젊은이들이 타오의 사촌들의 갱 패거리입니다. 갱들은 타오네 집을 공격하고 끝내는 슈를 피투성이로 만듭니다. 그러고는 코왈스키는 갱 패거리만 없으면 타오와 슈는 행복한 삶을 살수 있다고 이야기 하죠. 총한자루 없이 갱 집단에 가서 총을 꺼내는척 하다가 벌집이 되고 맙니다. 그 갱들은 경찰에 붙잡혀 가고 영화는 이렇게 끝이 납니다. 영화 중반에 그는 시한부 선고를 받는 것같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통해 선한 존재를 보호 하기 위해 그는 죽음을 그러한 식으로 선택한듯 보입니다. 그 갱들만 없다면 타오와 슈는 행복해질수 있기 때문이죠. 착한 젊은이들을 위한 희생. 그 희생에 대한 이미지는 특이한 샷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건 코왈스키의 죽은 시체를 카메라가 위에서 지켜보는데 그게 흡사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형상과 같다는 점입니다. 투팔을 벌리고 가지런히 발을 모은채 얼굴을 하늘을 향한채 잔디 밭에 쓰러져있는 그 형상. '희생'을 통해 소중한 것을 지켰다는 의미 일까요.

     

    기독교에 대한 비판도 들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가 젊은 신부에게 고해 성사를 하러 갔을떄, 그의 이야기를 들은 신부는 성모송 10번 주기도문 5번을 외우면 그의 죄를 하느님이 용서를 한다고 하죠. 코왈스키는 아내 몰래 바람을 핀일, 물건을 세금 없이 산 일등등을 고백하는데 그의 원죄는 한국전쟁시에 사람을 죽인 일이죠. 하지만 그것을 고백하지는 않습니다. 그러한 원죄는 하느님이라도 죄를 씻어줄수는 없는걸까요. 삶과 죽음과 유리되어 있는 기독교. 그는 기독교를 믿지 않습니다. 고해성사를 하러 간 것은 그 곳에 있는 젊은 신부를 위해서 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는 사람을 죽인 원죄를 자신이 총을 맞으면서 용서받아 보겠다는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랜토리노

     

    그랜토리노는 1972년산 포드에서 나온 자동차라고 합니다. 끝장면에서 나오는데 그 그랜토리노는 그걸 가지고 싶어했던 손녀딸이 아닌 옆집에 살던 흐멍족 소년 타오가 물려 받게 되는데요, 그랜토리노가 우리가 지켜야할 가치를 의미한다면, 그러한 가치는 가족이나 인종에 관계 없이 성실하고 노인을 공경할줄 아는 소년에게 물려줘야 한다고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타오가 타고 있는 그랜토리노는 해안가를 달립니다. 그리고 영화는 끝이 납니다.

     

    결국엔 이러한 이야기 인것 같습니다. 젊은이들은 갱처럼 살지 말고 타오처럼 성실하게 살아야만 해. 그리고 꼰대들은 그런 성실한 삶을 사는 젊은이들을 위해 희생을 하면서까지 도와주고 여러 가치들을 그들에게 심어줘야해. 이런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오독했다구요? 상관 없습니다.

     

    과연 앞으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몇편의 영화를 더 만들수 있을까요. 영화 마지막 장면에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자막이 뜰때마다의 그 가슴 벅찬 감동들을 앞으로의 영화들을 통해서도 느껴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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