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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콜래트럴」
    영화노트/할리우드 2013. 2. 24. 14:29

     


    콜래트럴 (2004)

    Collateral 
    7.6
    감독
    마이클 만
    출연
    톰 크루즈, 제이미 폭스, 제이다 핀켓 스미스, 마크 러팔로, 피터 버그
    정보
    범죄, 스릴러 | 미국 | 120 분 | 2004-10-15
    글쓴이 평점  

     


    아메리카

    저자
    장 보드리야르 지음
    출판사
    산책자 | 2009-03-3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희망도 매력도 클라이맥스도 없는 낙원, 미국 문명 기행! 실현된...
    가격비교

     

     

     

     

     

     

    맥스(제이미 폭스)의 택시에 잘 차려 입은 손님이 탄다. 손님은 살인청부업자 빈센트(톰 크루즈). 맥스를 위협해 자신의 ‘업무’인 살인을 해나간다. 뻔하고 단순한, 어디선가 많이 보아왔던 단선적인 스토리 라인이다. 간단한 서사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시종일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관습적인 서사구조는 대중을 만족시킨다. 비극적 영웅과 도시, 어둠, 자동차로 대표되는 갱스터 영화의 장르적 도상은 관객들에게 친숙함을 던져주며 관객의 장르에 대한 기대치를 충족시켜준다.

     

    「콜래트럴」은 가장 마이클 만스러운 영화이다. 마이클 만 영화의 공통점들-두 남자의 이야기, 대도시의 야경, 클로즈 업된 얼굴-이「콜래트럴」에서 고스란히 드러나며 이러한 공통점은 마이클 만 특유의 미학적 스타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콜래트럴」은 빈센트와 맥스의 두 남자의 이야기다. 대도시에서 일어나는 두 남자의 대결구도는 그의 전작인 [히트]의 대결구도와 흡사하다. 빈센트와 맥스의 대결구도는 프레이밍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카메라는 앞자리의 운전석의 맥스와 뒷 자석의 빈센트를 한 프레임에 담고 각각의 표정을 담은 얼굴을 클로즈업 해서 그들의 감정을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 되도록 한다. 빈센트가 맥스의 택시를 탔을 때 빈센트는 잘 차려 입은 양복을 입고 이에반해 맥스는 촌스러운 옷을 입고 있다. 빈센트의 잘 차려 입은 양복과 단정한 헤어스타일은 화이트칼라의 분위기를 풍겼다. 영화상에서 맥스의 두 번째 손님인 검사가 들어간 건물에서 빈센트가 나온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계급대결의 영화인가”라고 생각했지만 이건 계급 대결의 영화가 아니었다. 불행한 과거에 얽매어 있는 남자와 허황된 미래를 바라 보며 현재를 긍정하는 남자의 대결이었다.

     

    빈센트는 비극적 영웅이다. 빈센트는 알수 없는 큰 힘에 의해 조종되어지는 살인 도구다. 하지만 그는 관객들에게 미움을 받지 않는다. 그것은 첫째로, 톰 크루즈라는 배우의 선한 이미지 때문이다. 그는 처음으로 악역에 도전하며 그간 쌓아왔던 이미지를 완전히 전복시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지저분하게 기른 수염과 아무렇게나 풀어헤친 와이셔츠, 그리고 밝게 염색한 그의 머리는 확실히 그간 정의롭고 반듯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그의 필르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초기 작품에서의 반항기 넘치는 역할이나, 로맨틱한 역할, 또는 세상을 구하는 영웅 등의 선한 역할을 해왔다는 것을 알 수있다. 그는 전문 악역배우가 아닌 것이다. 그는 분명 악역을 맡고 있지만 필르모그래피에서 쌓아왔던 작품의 이미지로 인해 「콜래트럴」을 보면서도 관객들은 이전 영화들의 환영을 톰 크루즈에게 볼 수 있는 것이다.

     

    둘째로, 그에겐 살인자가 될 만한 이유가 있었다. 어렸을 적의 불행한 과거 때문이다. 원래 태어날때부터 어머니가 없고 아버지를 죽여야만 했던 톰 크루즈의 과거를 관객들이 아는 순간 그가 살인자가 될 만한 어떤 사회적 구조에 의한 피해자의 느낌은 톰 크루즈라는 배우의 선한 이미자와 합쳐져서 관객들은 그를 마냥 미워 할수 없다. 관객들은 빈센트를 연민을 가지고 지켜보게 되며 동화(同化)된다.

     

    빈센트는 사람을 죽이고는 살인의 정당화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지구상의 60억이나 많은 사람이 있고 해가 지기 전에 다른 나라에서는 수천 수만명의 사람이 살해당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억지스러운 ‘살인 정당화 논리’는 자위(自衛)를 위해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현재 미국을 꼬집어 말하는 듯 하다.

     

    이에 반해 맥스는 미래를 바라보며 현재를 긍정하는 인물이다. 리무진 회사를 차리겠다는 긍정적인 꿈을 가지며, 힘들 때 마다 몰디브 섬의 사진을 보면 힘이 생긴다. 그의 과거가 어땟는지에 대해서 관객에게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는다. 과거와 단절되어 있으며 현재를 긍정적으로 참으며 미래의 얘기만 할뿐이다.

     

    빈센트는 몇 번의 살인을 하게 되고 그를 향해 맥스는 빈센트의 과거를 공격한다. 니가 살인을 저지르는 미치광이가 된 것은 과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고아원에서 산것과 다름없다고 말한다. 이에 화난 빈센트는 맥스의 꿈이 한낱 허황된 꿈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꿈에서 깨어나면 아무일도 없었다는 것을, 꿈은 현실이 될수 없다고 이야기 한다. 맥스에게는 리무진 회사라는 그나마 현실적인 꿈과 몰디브라는 유토피아가 현재를 긍정하며 택시를 굴러가게 하는 요소이다. 그 꿈들이 이뤄지기엔 힘들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빈센트에게 모욕당했을 때 택시는 폭주하게 된다. 마치 꿈을 잃고 방향없이 헤메는 인간과 같이 택시는 폭주하다가 전복한다.

     

    맥스와 빈센트의 이원적 구조에서 대립하여 그들 간의 단순한 차이 때문에 실제로 그들의 상징적 의미는 보편적이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으로 된다. 맥스와 빈센트의 대립이면에 놓여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일련의 대립하는 가치들에 대한 미국의 양면성이다. 유럽과 단절한 채 신대륙에서 프론티어 정신으로 인디언을 학살했던 미국은 빈센트다. 미국이 건국과정에서 인디언을 살해하고 유럽과 단절된 모습을 보였듯이 빈센트는 부모와 단절되어 있고 그의 과거로 현재 그는 살인청부업자가 된 것이다. 미국이 현재 세계의 깡패국가가 되었듯 폭력적이었던 미국의 과거는 현재의 미국이 폭력국가가 되는 기제가 되었다. 그렇다면 감독은 맥스를 통해 미국의 어떤 면을 말하고 싶었을까?

     

    미국인들은 현재의 가치의 위기 속에서 모든 사람들은 결국 곧바로 앞으로 나아가려 하고, 뛰어난 연기로 그들의 가치를 현실로 만들려는 문화로, 이민에 의해 실현된 지리학적 정신적 단절 덕분에 무로부터 이상적 세계를 창조할 수 있었다고 자부하는 사회로 생각한다. 이러한 이상적 세계창조에 도움이 되었던 것이 영화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세계의 폭력국가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든 오만하게 굴어도 미국에 의해 고통을 겪고 있는 나라들을 매혹시키는 것이 바로 미국 문화이며 이 문화-영화로 대표되는-는 미국이 모든 꿈을 실현시켜 왔다고 싶고 어리석은 확신을 통해 사람들을 매혹시킨다. 맥스는 미국의 유토피아의 성취라는 문화에 매혹당한 ‘영화 속’의 인물이며 영화는 유토피아-아메리칸드림이라고도 할 수 있는-를 설정하고 실현될 수 있는 역할을 해왔다.

     

    유토피아를 바라보는 미국사회는 괜찮은 것인가? 이에 대한 감독의 대답은 ‘아니다’ 이다. 「콜래트럴」을 지배하는 감성은 고독, 소외감이다. 고독을 표현하는 영화적 장치들이 영화의 주제를 부각시킨다. 도시의 야경이 주는 고독한 이미지, 우수에 가득찬 빈센트의 얼굴, 재즈 음악과 락 발라드는 쓸쓸한 감성을 더 고조 시킨다. 맥스가 택시 안에서 혼자서 샌드위치를 먹는 장면-장 보드리야르는 “빈민보다 더 슬프고, 거지보다 더 슬픈 것은 공중 속에서 혼자 식사하는 남자이다. 혼자서 무언가를 먹고 있는 남자는 죽은 것이다.”라고 말했다.-과 LA 밤거리에 택시 앞에 나타난 늑대. 고독한 늑대를 보며 빈센트는 뭔가 모를 연민의 표정으로 늑대를 바라본다. 늑대에게서 자기의 모습을 발견한 듯이...

    감독은 엔딩에서 확실하게 군중속의 고독을 표현하는데. 빈센트는 죽기전 “한사람이 고속버스를 타고 LA로 가다가 차에서 죽었지. 그런데도 아무도 신경을 안 썼다지.”라는 말을 하곤 죽는다. “이게 과연 제대로 된 사회인가?” 라고 감독은 관객들에게 묻고 있다. 영화의 엔딩장면은 빈센트가 죽은 채로 지하철 좌석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빈센트가 앉아 있는 좌석 외에 다른 텅 빈 좌석들을 함께 보여주는 화면구성을 통해 빈센트의 고독했던 인생이 끝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하철은 동이 터오는 하늘 속에서 빈센트만을 태운채 천천히 달린다.

     

    모든 감독의 꿈은 대중성과 예술성을 같이 잡는 것이다. 이러한 꿈에 마이클 만은 가깝다. 마이클 만은 장르영화를 만들면서도 작가주의를 포기 하지 않은 감독이다. 장르의 공식을 따라가면서 관객들과 유리되지 않으면서도 그만의 스타일이 영화 곳곳에 묻어난다. 그 만의 스타일과 그 속에 감춰줘 있는 이면을 보여줌으로써 작가주의도 포기하지 않는 마이클 만. 좋은 영화란 어떤 것일까? 각자 나름의 정의가 있겠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재미있으면서도 다 보고나면 멈춰서 생각할 수 있는 꺼리를 주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현재 거기에 가장 근접해 있는 감독이 마이클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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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시네마테크를 운영하고 있는 김성욱 선생의 영화장르연구 수업 레포트.

    밤의 색을 다루는 건, 마이클 만이 짱이라는거.. 오늘 박훈정의 「신세계」를 보면서 마이클 만이 생각났었다.

    장 보드리야르의 『아메리카』를 참고저서로 선택해주셨으나 읽기 너무 난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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