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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만 괜찮으면 유예기간 1년쯤은 어때「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 (Tamako in Moratorium, 2013)」영화노트/일본 2014. 9. 27. 18:05
빈둥빈둥의 죄악감
대학교 방학때는 서울을 떠나 집이 있는 부산으로 갔다. 플레이스테이션2를 사서 동생과 하거나 하루종일 영화 3편을 보는 것을 목표로 골방에 갇혀 있던 적이 있다. 계속 그런식으로 살다보니 무지 지겹긴 했지만 지겨워질만 하면 다시 학기가 찾아 왔으니 속 편하게 놀았던거다. 대학2년을 마치고 군대를 가기위해 부산으로 내려갔을때는 무려 3개월이란 시간이 있었고, 그때도 물론 주류적인 시선으로 본다면 아무것도 안했다. 그때도 입대라는 것이 있었기에 지루한 시간을 그래도 잘 지냈던 것 같다. 돈을 벌어오는 아버지와 밥을 해주는 어머니가 있었고 걱정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만약 내가 지금 퇴사를 해서, 앞날의 아무 계획도 없이 부산에 내려가 10년전과 똑같이 생활을 하게 된다면 어떤일이 일어날까. 마음 편하게 책도, 게임도 할 수 없을 거고, 무엇보다 부모님이 자주 화를 내시겠지. 대학교때도 취직 준비를 하기 위해 했던 휴학에 아버지는 몹시 화를 내셨다. 휴학하면 뭐 할거냐고. 그리고 방학때 빈둥대고 있으면 퇴근하고 오셔서 오늘 뭐했냐고 짜증을 부리셨지. “몰라” 나는 그걸 짜증으로 받아쳤다. 무엇보다 이러다가 도태되는게 아닐까 불안하고 초조해서 신나게 놀 수 없을 것 같다.
「모라토리움기의 타마코」는 23살의 백수와 그의 아버지를 그린 영화다. 대학은 졸업했지만, 다시 아버지가 있는 스포츠 용품점을 겸하고 있는 고향 집으로 돌아와..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한다. 만화책을 보거나 똥을 싸거나 가끔 장을 보거나 하는 정도. 앞날에 대한 계획도 없다. 취직 공부를 하지도 않는다. 빈둥빈둥. 지나가는 세월에 몸을 맡긴다. 아주 한심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유년시절을 지나 학창시절을 지나 노동자가 되어야 하는게 평범한 집안의 평범한 사람의 운명인 것을. 타마코는 대학생과 노동자사이의 아무것도 아닌 존재의 기간을 보내고 있다. 본인은 얼마나 스트레스가 클까. 앞날의 계획도 없이 논다는 건. 그리고 부모의 집에서 출가할 나이가 되어서 기생해서 지낸다는 것은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몹시 죄악감이 드는 행위일 것이다.
모라토리움. 우리말로 말하자면 유예기간이다. 그는 결국엔 노동자가 될 것이다. 영화 도중에 타마코는 어색한 관계의 친구를 거리에서 만난다. 그 친구는 아마 도쿄에서 일하고 있고 잠시 고향에 휴가 차 내려온 것 같다. 그리고 영화의 종반부 그 친구가 다시 나오는데 도쿄로 향하는 열차를 기다리는 플랫폼에서 하염없이 울고 있다. 추측컨데.. 도쿄로 돌아가서 일하고 싶지 않은게 아닐까. 친구가 왜 우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은유도 없이. 도쿄방면이라는 플랫폼에 쓰인 글자만이 보일뿐.
평범한 사람은 평생 일해야 한다. 가족을 꾸리면 쉴 수 없을 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학교를 다니고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노동자가 되는 준비 기간.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운명인 평범한 사람들. 타마코는 학생과 노동자로 가는 다리 위에서 잠시 머물러 있을 뿐. 일하기 위해서 그도 도쿄로 가게 될 날이 올텐데. 유예기간 1년쯤 어떠리. 불안과 초조를 먹고 사는 신자유주의 사회. 조금이라도 쉬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금방 도태될 것 같다. 이게 사실일수도 있다. 경쟁은 심해져 가고 좋은 일자리는 줄고. 시간이 있으면 좀더 날카로운 노동자가 되기 위해서 갈고 닦아야 한다. 무딘 칼날은 버림 받으니까. 사람의 생애에 걸쳐 더 이상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시기가 신자유주의사회에는 없는 것 같다. 물질세계에서 더 이상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
타마코여 23살의 1년 잘 보냈나요? 당신이 이제 회사에 들어가 신자유주의 논리가 내면화되면 그런 유예기간을 설사 얻는다고 해도 마음 편하게 쉬기는 힘들 겁니다. 그게 신자유주의사회의 평범한 사람의 운명이지요. 쓸데없어 보이는 짓을 마음 편하게 할 수 있는 사회가 참 좋은 것 같은데 말이죠.
*영화의 배경이 된 곳은 야마나시현 고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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