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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도호쿠여행] 4부 오타루 그리고 청춘 18의 시작 (오타루, 오샤만베 2008.12.25)여행노트/일본 2015. 9. 6. 10:52
홋카이도 오타루의 겨울은 무척 추웠다. 게스트 하우스는 두꺼운 이불이 있었지만, 그래도 추웠다. 같은 방에서 자는 남자가 자기 전에 추우니까 이불을 두겹으로 덮고 자는게 좋을거라고 조언을 해줬다. 그래도 너무 추웠다. 여긴 실내인데. 석유 난로에 석유가 없었다. 주인에게 가서 석유를 넣어달라고 했다. 주인의 표정이 약간 띠꺼웠던걸로 기억한다.
잠에서 깨니 같은 방의 남자가 짐을 챙기고 있었다. 오늘도 딱히 무엇을 하겠다는 계획이 없었다. 목적지만 대충 정해 놓고 유유자적 생각나는데로 움직이는 여행이었다. 애초에 계획을 짜기에 시간이 급박했던 이유도 있었다. 당장 아침에 일어나서 할일이 없으므로 대놓고 늦잠을 잤다. 다른 게스트하우스 이용객은 밥을 다 먹고 짐을 싸고 떠나려 하고 있었다.
살면서 마법 같은 순간이 불현듯 찾아온다.
늦잠 잤다 하하
늦잠을 자고 빵과 커피를 먹고 있는데 라디오가 너무나 정겨웠다.
금붕어 두 마리가 헤엄치고 있었꼬 내 옆에는 로그 (♀,8살) 가 얌전히 내 발밑에 있었다.
갑자기 그곳에서 하룻밤 더 머물고 싶어졌다. 키무라 카에라의 どこ라는 곡이 었던 것 같다.
온 몸에 닭살이 돋았던 순간이다. 지난 1년간 억눌려 있던 오감이 이 순간 확 하고 열렸다. 좋은 음악과, 커피가 주는 각성 효과, 내가 있는 곳이 일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온 마법 같은 순간. 즐거운 여행의 시작이었다. 드디어 여행자 모드로 코드가 전환되는 순간이다. 이때 내가 느꼈던 감정은 7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늦은 아침, 게스트 하우스를 나선다. 다시는 이 곳에 머무르는 일은 없겠지. 지금 보면 오글거리는 문구를 방명록에 남겼다. 2015년에도 모리노키는 오타루에 있다. 언젠가 오타루에 가면 이 곳에 묵어서, 25살의 내가 썼던 방명록을 실제로 보고 싶다. 그런날이 오면 좋겠다.
숙소 화장실에
ぼくはなぜ一人でここまで来たのか
방명록에
2008. X-mas僕は生きている
라고 남겼다.
영화 「러브레터」의 도입부에 우편 배달부가 오토바이를 타고 힘겹게 눈 덮인 언덕을 올라온다. 후나미사카. 좋아하는 장면 중의 하나다. 영화 속에는 서사만 있는게 아니다. 불어오는 바람과 내리쬐는 햇살을 느끼게 해준다. 「러브레터」는 따뜻한 눈을 느끼게 해줬다. 그리고 「러브레터」는 첫사랑과 일본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했다. 한낱 허망한 거짓 이미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그 이미지들을 붙잡고 있다.
오타루는 언덕이 많은 도시로, 언덕이 많은 까닭인가 자전거가 잘 보이지 않았다. 장화를 신은 사람이 많았고 곳곳에 미끄럼 방지 흙이 있었다. 언덕이라 나도 몇 번 미끄러질 뻔 했고, 또 미끄러졌다. 다시 이 곳에 올 수 있을까?
여행 4일쨰
머뭇거리는 일이 없어졌다.
여행자의 기분. 편하다.
후지이 이츠키 사마 후지이 이츠키 사마
몽환적인 장면이었던 병원 씬은 병원이 아닌 오타루 시청에서 찍었다.
오타루 시청은 러브레터에서 병원으로 쓰였던 건물이라고 한다. 정말 그 복도가 있었고, 그 괘종시계도 있었다. 좋았다.
「하프웨이」러브레터와 괘를 같이 하는 영화다. 이와이슌지가 제작했고, 당시 개봉이 곧 있을 거라며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하프웨이」를 봤다. 좋은 영화였다. 내면의 무언가가 자꾸 건드리는 영화였다.
12월25일 12:00(?) 오타루 출발->15:21 오샤만베 도착
(청춘 18티켓 시작)
오타루를 떠나 하코다테로 간다. 중간에 오샤만베 역에서 환승을 했다.
14:20 열차 안
밖으로 보이는 풍경.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얀 눈.
앙상한 가지 밖에 남지 않은 나무.
자그마한 마을.
15:21 오샤만베 도착
16:16분에 출발하는 하코다테행 열차를 기다려야 한다. 역을 빠져나가 바다가 보이길래 비를 맞으면서 까지 해서 해변 쪽으로 걸어가 보았지만, 보이는 건 더러운 바다 밖에 없었다. 덜컹덜컹 전차에 세 시간 동안 시달리니 아무 것도 한게 없지만 피곤하고 배고프다. 비는 내리지만 그다지 춥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냥 아무 것도 없는 완전 시골. 날씨도 흐려서 내 기억 속엔 음침한 이미지 밖에 남지 않을 것 같다.
커플한쌍
남남친구
여자한명
이 모인다
여자 한 명은 연하장을 다 쓰고 우체국에 투함하러 간다.
12월25일 16:16 오샤만베 출발->19:29 하코다테 도착
7시간 정도 열차에 시달렸고 저녁 무렵 하코다테에 도착했다. 역 뒷편의 2000엔짜리 싸구려 여관에 묵는다. 이불이 없는 다다미 방이었다.
직원이 재확인을 했다.
이불 없어도 괜찮습니까?
네 괜찮습니다.
이불 덮을 돈도 없었다. 허름한 다다미 방에서 보일러를 틀고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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