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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규슈여행기] 0.나는 왜 북규슈로 여행을 갔는가
    여행노트/일본 2014. 6. 24. 00:15

    0.나는 왜 북규슈로 여행을 갔는가

     

    2009년의 2월 모일. 일본 오사카의 이름 모를 마트에서 휴대폰을 해지하고 있는 간코쿠진이 있었으니.. 바로 나다.  친구와 간사이 여행을 했고, 오사카에서 부산으로 들어가는 배를 타고 일본 유학생활을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아뿔싸. 여객선 주변에는 핸드폰 가게가 보이지 않았다. 아 저기 보이는 큰 마트. 핸드폰 해지가 가능하길 바라며.. 갔건만 해지에는 시간이 많이 걸렸고, 나를 응대하던 남자직원은 초보였다. 다이죠부. 다이죠부. 속으로 되뇌었다. 일본에 다시 올일이 없으면 휴대폰 해지 따위 안하고 가면 될텐데. 그러면 블랙리스트에 올라 앞으로의 입국이 금지 당할 수도 있었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던 대학교 4학년. 일본에서 취직이 가능할 수도 있었다. 일본 기업에 취직이 되었는데, 아뿔싸 이 간고쿠진이 핸드폰 해지를 안하고 토꼈던 이력이 남아있으면, 당연히 빠꾸겠지. 나와 그 핸드폰 가게의 남자직원은 서로 끙끙 거리며 핸드폰 해지를 했고, 나는 귀국이 얼마 안남았다며 오늘 꼭해야 한다며 직원을 쪼았다.

     

    해지 하는데 한 시간도 넘게 걸렸던 매장. 죽여버린다.

     

     

    드디어 해지 성공!

     

    몹시도 하늘이 푸르렀던 그 날, 오사카의 이름 모를 장소에서 나는 개 뻘짓을 했다

     

    그러나 이미 승선시간이 지났다. 선내에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 선내에 계신 감XX씨 계시면 안내데스크로 와주세요”. 나는 소프트뱅크, 친구는 도코모 핸드폰을 쓰고 있었다. 해지는 각각 다른 장소에서 했고, 승선전에 여객선 터미널앞에서 만나자고 했었던 것이다. 친구는 먼저 해지에 성공하고 여객선으로 갔는데 내가 보이지 않아서 선내 안내방송을 신청했던 것. 친구야 내가 아무리 니가 싫어도 그렇지 너 뺴놓고 먼저 승선을 했겠니? 했겠지 ㅋㅋ

     

    아무튼 배는 떠났다. 어쩔수 없다. 다른 귀국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있었다. 터미널에는 마침 그날밤 출발하는 규슈의 관문인 고쿠라로 향하는 훼리가 있었다. 이걸 타고 고쿠라에 도착한 다음 고쿠라에서 후쿠오카로 가서 후쿠오카에서 부산으로 가면 귀국은 스무스하게 되는 거였다. 근데 역시 계획대로 안되니까 몹시 짜증이 났단 말이지. 

     

    다음날 아침 고쿠라에 도착해서 JR을 타고 후쿠오카로 이동 기념품을 몇개 사고는 부산-후쿠오카를 왕복 운행하는 쾌속여객선 코비를 탔다. 배에서는 카모메 식당이라는 영화를 틀어줬다. 해군 출신이었지만 군에서 컴퓨터 타이핑과 맥심만 줄곧 타오던 나는 배멀미에 머리를 부여잡았다. 아 ㅆㅂ 카모메 식당, 아 빌어먹을 후쿠오카. 이 날 이후 나는 오기가미 나오코의 영화를 몹시도 싫어하게 되었다. 근데 이상하게도 규슈는 다시 가 보고 싶었다.  

     

    비가 내리던 그 스산한 회색빛 도시. 특히 아오야마 신지의 영화에 줄곧 등장하는 북규슈를.

     

    고쿠라역에서 요시노야 규동을 먹고 공중전화로 엄마에게 "엄마 귀국이 하루 늦어졌어" "왜" "묻지마"

     

     

    시간은 이윽고 5년이 흐르고...

     

    2014년의 1 1.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 5월초의 황금휴일에 34일 일정으로 규슈로 가는 비행기 표를 끊었다. 언제나 그렇듯 1 1일에는 의욕이 샘솟아서 이것저것 계획하게 되는데 이 여행도 의욕 만땅일떄 질러버린 비행기 표였다. 시간이 점점 흐르고 일상에 지치고 고질병인 어깨가 또 뭉치고 짜증이 치솟았다. 점점 가기가 싫어졌다. “아 혼자 여행가기 싫다그렇다고 같이 갈 사람도 없었다.

     

    그러던중 개 같은 사건이 닥쳤다.

     

    회사 워크샵에서 발표가 있다고 했다. 희망자를 먼저 뽑았다. 우리 회사의 사풍에 무슨 지원자가 있겠냐. 지원을 안했더니 워크샵 36시간 전에 팀장 쉐키가 나보고 하라고 메일을 보낸다. 확 진짜. 죽여버리고 싶었다. 그래 이왕 하는김에 제대로 해보자. 이상한 오기가 생겼다. 모든 일에서 가장 중요한건 한발짝을 내딛는건데, 팀장이 뒤에서 밀었다. 어쨌든 두발짝 걸어야 했다. 걷다보니까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뻘짓들을 모아서 워크샵 발표를 준비했다. 스티브 잡스가 일전에 우리가 평소에 하는 일은 점이고 이 점들은 언젠가 이어진다는 류의 말을 했는데 꼭 이 말이 들어맞았다. 내가 좋아하는 여러가지 요소를 섞었다. 12시가 넘었다. 갑자기 든 생각. 아 폴매카트니 공연 돈을 입금 안했잖아?! 12시 전에 입금을 했어야 했다. 어떻게 구한 자리인데. 허겁지겁 접속. 거긴 이제 내 자리가 아니었다. 아 다 죽여버리고 싶다. ㅆㅂㅆㅂ 분노했지만. 며칠 뒤 그와 비슷한 자리를 구했고, 다들 알다시피 폴 경은 일본에서 몹시 아파 일본, 한국공연을 모두 취소하고는 영국으로 돌아가셨다지?

     

    어쨋든..

     

    나는 사람을 웃기는 사람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시샘한다. 이게 직업인 사람이 개그맨이다. 일본의 예능이 우리나라보다 도덕, 윤리면에서 자유로운 편이라 즐겨보는데, 진나이 토모나리라는 개그맨의 혼자서 하는 꽁트. 그걸 비슷하게 사용해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진나이 토모나리의 꽁트. 천재다!

     

     

    오프닝은 알프레드 히치콕의 오프닝 시퀀스로 시작하자. 이건 2008년 드림시어터 공연 때 막이 열리기전 싸이코의 오프닝 음악을 사용했던게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서 언젠간 써보고 싶었다. 그리고 회사에 나와서 이곳 저곳에서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찍어서 좀 색다른 방식으로 발표를 준비했다. 상금이 걸려있던 워크샵 발표. 결과는 1위였다. 별것 아닌 발표였지만 평소에 해오던 뻘짓을 믹스했더니 상금 50만원이 나왔다. 지난한 뻘짓의 결과였다.

     

     

    50만원

     

    으로 뭘 할 수 있을까.

     

     

    그래 이 50만원은 원래부터 내돈이 아니다. 공돈이다. 갑자기 든 생각. 회사를 쉬고 맨날 낭만 낭만을 외치는 서른살 백수 권보이에게 규슈를 같이 가자고 하자

     

    "일본 가자"

    "좋소"

     

    나는 그렇게 해서 50만원에 권보이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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