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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홋카이도 도호쿠 여행] 8부 남은 여행 (후쿠시마->도쿄->닛코->후쿠시마 2008.12.29~1.3)
    여행노트/일본 2015. 11. 29. 21:10
    12월 29일 후쿠시마->도쿄
    (청춘 18 티켓 사용)


    도호쿠 북해도 여행은 끝났으나 도쿄로 갔다. 남은 여행. 친구들을 만나러. 연말을 혼자 보내긴 싫었다. 10:35 후쿠시마를 출발한다. 청춘18 티켓을 이용한다. 갈 길이 멀었지만 재래선으로 도쿄를 가는건 처음이라 그리 지루한지 몰랐다. 

    11:01
    짐도 가벼워졌고 마음도 가벼워졌고 날씨도 좋다. 피곤도 다 날아갔고 SPITZ는 여전히 좋다.
    후쿠시마에서 조금 밑으로 내려갔을 뿐인데 눈이 보이지 않는다.
    안내렸나보다.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일을 하고 싶다.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나는 지금 같은 장소에서 6년째 일하고 있고, 내근직이다.

    13:37 우쯔노미야
    어른이 된다는 건 꿈을 버려 가는 과정인 걸까.

    친구집에 가기 전에 도쿄 근처의 가보지 못한 이곳 저곳을 들러본다. 후지사와, 요코스카를 들러 신바시에 내렸다가 친구집이 있던 다나시로 간다. 연말이었다. 


    노래방에서 2008년의 마지막 날을 보냈다. 뜨거운 술을 노래방 점원이 줬다. 일본의 풍습인 모양이다.
    우린 술을 나눠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곁에 있던 친구들이 참 고맙다. 

    이제 2009년이다. 

    1.2 09:17
    간밤엔 너무 추웠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언제가는 잃어버리고 생각도 나지 않을 지금 이 순간과 운 좋게 건강한 몸뚱아리가 다다.
    결론은 가지고 있는 것. 몸뚱아리를 이용해 지금 무언가를 하는 것 밖에 없다.




    2009년 1월 3일 (도쿄->닛코->후쿠시마)
    (청춘 18 티켓 사용)

    다시 후쿠시마로 가야 할 시간. 세계문화유산인 닛코를 들렀고, 약간은 무거운 마음이었을 수도.. 



    1.3 10:25 우츠노미야로 가는 열차 안
    어제 본 아니 보다만 영화 「비포 선셋」은 전작 「비포 선라이즈」와 마찬가지로 롱테이크가 많았고 두 주인공의 연기는 여전히 대단했다. 

    행복이란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닌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에 달렸다

    는 말에 크게 공감했고

    건강한 자는 욕망이 철철 흘러넘친다는 말에도 어느 정도 공감했다. 
    그렇다면 나는 건강하지 않음에 틀림 없다.

    「초속 5센티미터」와 「무지개의 여신」과 「릴리 슈슈」를 조금씩 봤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영화들이다. 「초속 5센티미터」는 잘 몰랐었는데, 굉장히 슬픈 결말로 끝이 나는 것 같다.
    '첫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아름답다'를 신카이 마코토가 보여주려 한게 아닐까. 그것보다 신카이 마코토는 일상적인 이미지로 사람의 가슴을 흔들어 놓는 재주가 있다.

    「초속 5센티미터」도  「릴리 슈슈」도 토치기가 배경인 것 같다. 나는 지금 토치기에 있거나 적어도 토치기를 향하는 열차를 타고 있다. 창 밖으로 높은 산은 보이지 않고 이미 추수가 끝나 황폐한 논과 한적한 주택가들이 지나가고 있다. 

    분명 아사무시 수족관에 갔다 왔을 때는 동물원에 가고 싶어서 어제 우에노 동물원에 갔다 왔건만 동물원은 재미 없었고 피곤했다. 그리고 타나시의 그 집은 잠자기에 너무 추웠다. 그래서 잠을 잘 자지 못했다.

    도쿄에는 안갈뻔한게 좋았을까? 기껏 갔다온 홋카이도 도호쿠 여행에서 얻은 의욕의 불길이 서서히 그리고 한 순간에 언제 꺼진지 모르게 꺼져가고 있음을 지금 느끼고 있다. 내일부터 한달간은 다른것을 생각할 수도 없이 바쁠 것이다. 레포트도 써야 되고, 시험도 쳐야 된다. 

    나는 내가 만족할 수 있을 만큼 공부를 할 것인가?

    나에겐 예언자적인 기질과 긍정적으로 가치를 창조할 능력이 없으므로, 니체의 '혐오감'으로 내가 싫어하는 것을 혐오하며 그 반대되는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수 밖에 없다.








    16:54 쿠로이소행 전차 안
    방금 너무 피곤했는지 닛코선에서 푹 잤다. 
    2009년은 터프하게 살겠다.
    작살 나는 노을이다. 말이 멈추는 곳에 예술이 있다더니. 말로 표현하기 힘든 노을이다. 이른바 매직 아워.



    이렇게 끝이 났다. 
    여행 마지막 날. 닛코에 갔던 기억은 있는데, 후쿠시마로 돌아가는 길의 기억이 없다.
    기록 조차 없다.

    다음날..

    2009. 1.4. 18:16 후쿠시마 집

    여행이 끝났다. 2주간의 긴 여행이었다. 내일은 다시 학교를 간다. 현실로 돌아간다는 말은 쓰고 싶지 않다. 일상도 현실이고 여행도 현실이기를 원한다. 여행이 일상의 도피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일상과 여행은 연결되어 있음을 믿고 여행 중 피부로 느낀 것들을 일상에서 소중히 간직해서 일상을 더 소중히 하는데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좋든 싫든 한달 뒤면 일본 유학 생활은 끝이 난다. 그때까지 부디 터프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람
    이번 여행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을 봤다. 홋카이도에 가는 페리 안에서 아침에 방 출구 쪽은 춥지 않았냐고 어쩔 수 없네 라며 말을 붙여준 트럭 운전수로 보이는 아저씨. 삿뽀로에 있는 라면집에서 봤던 아저씨와 차슈가 필요 없다던 어떤 소녀의 가족. 내가 라면을 다 먹고 일어나자 라면집 아저씨는 키가 크다 아니 でかい라며 놀라고 그 소녀는 ほんとうだ 라고 말했던 것 같다.
    오타루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경영하는 아저씨와 개 두마리. 잊을 수 없는 다음날 아침 밖에는 눈이 내리고 라디오 소리와 금붕어. 내 발밑에 있던 개. 그리고 키무라 카에라의 「どこ」라는 곡. 이번 여행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하코다테에서는 얼굴이 확 바뀌는 호텔의 마스터로 보이는 아저씨와 잘 안까지던 계란을 삶은 할머니가 기억난다. 그리고 어떤 성당 앞에서 나를 찍어주던 남매. 그 남매의 사진을 찍어 왔어야 했다. 그들의 얼굴을 기억하고 싶다. 그리고 길 가다가 오징어를 건네준 아저씨. 그리고 그 오징어의 맛.
    하코다테에서 아오모리로 가는 1440엔의 허름한 배도 기억난다. 그곳을 매일같이 오갈 트럭을 잔뜩 실은 배.
    아모모리에서 나를 깨운 경비원 아저씨. 아키타에서 본 이쁜 여자. 아직도 그 복장과 귀걸이는 기억한다. 후쿠시마에서 밥을 지어준 쇼군. 도쿄의 친구들. 내가 탄 열차를 움직였을 수 많은 차장들. 내가 지나친 풍경에서 살고 있을 보지 못한 사람들과 같은 열차를 타고 있던 청춘18 동지들.. 그리고 나.
    人生, 人生, 人生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수 많은 우주들을 보았고, 그들은 각자 다른 우주를 품고 살고 있음을 안 것만 같다. 그냥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살자. 내 인생 최초로 혼자 떠난 여행이 이렇게 끝이 났다. 입안은 헐었고 밥먹으면서 코피가 났다. 
    잊지 말자. 잊지 말자. 잊지 말자.
    또 다른 여행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소중히 생각하며 살자. 
    지갑에는 3000엔 밖에 없지만, 마음은 천하를 다 얻었다. 나보다 여행 잘한 사람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라.
    이 뒷면의 공백들은 갔다 온 곳의 사진을 부치거나 다시 이 여행이 가고 싶을 때 추억할 공간으로 남겨두고 싶다. 일본에 와서 가장 잘한 것인것 같다.
    인생의 가장 큰 재산은 이런 것일까요?
    가끔씩 인생을 헛살았다고 입버릇 처럼 말하고 다니지만, 의지할 만한 친구가 여럿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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