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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영도구 청학동여행노트/국내 2014. 6. 1. 12:19
지금은 퇴근하고 돌아오면 뭘 해야 될지 모르겠고.. 그건 주말에도 마찬가지고.. 뭐 이런 삶을 살고 있지만. 어릴 때는 아주 심플하게 즐거웠다. 하교길에 만화책을 몇권 빌리고 집에 오면 밥을 먹고 레이싱 게임을 하면서 롯데 야구 경기를 fm 99.9로 들었다. 그때는 임수혁이 아직 살아 있었고, 중요할때 홈런을 자주 쳤다. 굳이 말하자면 롯데의 영웅 같은 존재였다. 휴일에는 용돈이 나왔고, 그 돈으로 동생과 오락실에 가서 정신을 잃을 정도로 즐겁게 오락을 했다. 동생과 컴퓨터 쟁탈전을 벌이다가. 어떤날에는 대항해 시대2를 쉬지 않고 4시간 연속으로 하다가 목욕탕에 가서 쓰러지기도 했다. 지금은 직장, 학교 때문에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지만.. 어쨋든 갈때마다 눈물이 나더라. 유년시절이 좋았기 때문일까? 그런 이유 보다는 이제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때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오른쪽 2층집에 살았다. 저 곳에서는 부산항이 한눈에 보인다.
이 사진은 아마 군대 휴가 나와서 2006년쯤에 가서 찍은 사진
집 현관문을 열면 보이는 풍경. 할아버지가 큰아버지댁에서 2주에 한번 작은 아들집인 우리집에 놀러오셨다. 다시 돌아가시는 날이면 골목에서 안보일때까지 우리 형제는 할아버지에게 손을 흔들었다. 담배 냄새에 찌든 회색 잠바를 입고 구부정한 등으로 저 골목을 지나다녔던 내 할아버지. 나는 왜 더 멀리까지 배웅하지 않았던걸까. 큰아들과 작은아들집을 왔다갔다 하시면서 생을 버티신것 같다. 청학동에서 큰아들 집이 있는 우암동으로 가는 길엔 꼭 자갈치를 들르셨다. 어느날 할아버지가 태종대에 놀러가자고 하셨는데, 나는 안간다고 했다. 지금와서는 그때 안간게 그렇게 한이 된다. 이 골목 구석구석엔 내 유년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옥상이다. 어머니는 빨래를 너셨고, 나는 저 물탱크 위에 올라가 뒷산을 바라보거나 부산항을 바라봤다. 지금생각하면 정말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물탱크 위에 자주 올라갔다. 저곳에서 뒷산을 보며 미술 숙제를 하기도 했다. 뛰어놀다 무릎을 철에 찍어 병원에 가서 살에 파묻힌 철부스러기를 떼어냈다. 다 못떼어내서 그 흔적은 지금도 내 몸에 남아있다. 해골 모양으로.
베란다. 베란다에는 작은 티비가 있었고, 할아버지가 오시면 티비를 방으로 내놓는게 일이었다. 내가 티비를 방으로 안가져다 놓으면 할아버지가 끙끙대며 가져다 놓으시곤 티비를 보셨다. 용의 눈물을 좋아하셨다. 저 네모난 창문을 통해서 뻐끔뻐끔 할아버지의 담배연기가 밖으로 많이도 빠져나왔을거다. 여름밤 샤워를 하고 시원한 대나무 장판에 누워서 라디오를 듣고 있으면, 저 창문을 통해 들어오던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고, 매미가 울어댔다. 옆엔 동생에 쿨쿨 자고 있었고, 걱정이 하나도 없던 시절이었다.
더러운 놀이터. 여기로 갈려면 뻉 돌아가야 했다. 빨리 가야 할때는 담을 타고 다녔다.
친구가 살던집. 친구는 나에게 J-POP을 알려줬고. 커맨드앤컨커 레드얼럿을 플로피디스크 50장 분량으로 줬다.
동네의 초입. 정말 좁았다. 내가 커진걸까 동네가 작아진걸까.
팽이를 돌리던 철판. 구멍이 뚫린걸 아무도 고치지 않는다. 20년전의 그 철판이 아직도 있다. 요즘 아이들은 뭘 하고 놀까.
왼쪽 계단으로 내려오면 될 것을 이 높은 곳에서 점프해서 내려오고 기어서 올라가기도 했다. 별난 놈이었다.
동생이 BB탄 총에 눈 옆을 맞았던 터널?
이렇게 좁은데 야구를 했었다.. 공은 자주 담을 타 넘어갔고 우리도 담을 타넘었다.
처음 이 동네 왔을때 살던 집. 이 곳에 살던 X근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몇 년전 아줌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기 싫었던 목욕탕. 토요일에 혼자 목욕탕을 갔었는데 X근이의 아버지가 있었고, 서로 등을 밀어주던 기억이 있다.
동네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 외갓집 갔다가 80KG이 넘는 쌀 한포대를 아버지가 힘겹게 메고 올라가던 계단이다.
초등학교 6학년때인가. 하교길에 친구들과 이 슈퍼 앞에 스포츠 신문을 그냥 보고 있었는데, 주인이 막 뭐라고 했다. 혈기왕성한 친구들은 올라가는 길에 당시의 슈퍼 이름이던 장홍슈퍼 씨발 이라고 큰소리로 얘기하면서 도망갔고, 열받은 주인 아줌마가 우리집에 찾아와 걔들이 누구냐고 학교에 알리러 따지러 왔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된건지. 기억이 없다.
이 때가 지금보다 더 좋았을까? 기억은 왜곡되기 마련이어서 그건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확실한건, 이 때는 엄마가 지금보다 훨씬 젊었었고, 할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는것. 이 이유만으로도 나는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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