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홋카이도 도호쿠여행] 3부 드디어 오타루 (오타루, 2008.12.24)여행노트/일본 2014. 11. 4. 22:42
늦잠 잤다. 여행은 기본적으로 피곤한 것이다. 훼리에서 잠을 자는게 불편했나보다. 호텔을 나왔더니 어제 봤던 테레비 타워가 보인다. 벌써 한낮이다. 하지만 딱히 서둘러야 할 일도 없다. 꼭 봐야 할 무언가도 없었다. 되는데로 가지는데로 널널한 계획 속의 여행이었다. 기본적으로 돈이 없어서 여행지에 와도 먹고 싶은것도 하고 싶은것도 할 수가 없었다. 삿포로를 조금 더 둘러보기로 한다. 눈이 말끔히 치워진 거리를 걷는다. "여기서 살아 보고 싶다" 라는 기분이 바로 든다. 서점에 들어간다. 삿포로에 살던 아이누 족에 관한 코너가 있었던것 같다. 서점을 나와 정처없이 걷다 홋카이도 대학 박물관으로 들어가 사람 해골을 보고 나온다.
드디어 오타루에 간다
12월24일 12:00 삿포로 출발->오타루
(JR, 620엔)
인생의 아주 중요한 시기에 만난 한 편의 영화나 한 권의 소설이 사람의 인생을 좌우한다, 라고 말하면 너무 거창한 걸까. 시네아스트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를 고등학교 2학년때, 하필이면 눈도 내리지 않는 고향 부산에 눈이 내리고 다탄 연탄 재들이 언덕을 구르던 그 추운 겨울날 보게 된걸까. 같이 보던 엄마는 쿨 잠을 주무시고, 나 혼자 두근두근 이 영화를 보고 그때부터 '일본'이라는 나라는 내 인생의 거대한 키워드가 되어 지금도 날 따라다닌다. 「러브레터」를 보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지금과는 다른 곳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 내 인생의 소중한 장소가 되어버린, 영화 「러브레터」의 배경이 된 오타루에 간다. 삿포로를 출발한 열차는 오타루에 도달할 무렵 겨울 바다 옆을 달리게 된다. 겨울 바다 옆을 달리던 열차는 주택의 좁은 열차길로 들어가 오타루 역으로 들어선다. 내 인생에 손 꼽을만한 열차길이기도 하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이 날 오타루에 도착해서 나는 아무것도 한게 없다. 「러브레터」의 로케지를 찾아가지도 않았고, 그냥 하염 없이 눈길을 걷고 또 걸었다. 나는 언타쿠다. (언덕오타쿠) 게다가 눈을 좋아했다. 아니, 이때 부터 언덕 눈길을 좋아하게 된것 같기도 하다. 오타루는 내가 좋아하는 거의 모든 길의 요소를 다 갖추고 있었다. 언덕이 있고, 눈이 있고, 바다가 있고, 사람이 거의 없고. 일본에서도 관광지로 유명한데, 관광지가 아닌 주택지로 들어가자 젊은 사람은 얼마 보이지 않고, 죄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장화신은 노인들이 걸어 다니고 있다.
다시 말하자. 하염 없이 걷게 된 이유에 대해. 미리 예약해둔 게스트하우스를 죽어라 찾아도 찾아지지 않았다. 지도가 프린트된 A4용지 하나를 들고 큰 가방을 메고 옷이 든 크로스백을 든 키 큰 청년이 오타루의 주택가를 헤매고 있다.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추웠던 걸로 기억한다. 동네 주민에게 물어본다. "여기 아세요" "응 저기예요". 인생 처음으로 게스트하우스에 묵어본다. 돌이켜보니 약 일주일간의 이 여행에서 나는 다양한 곳에서 잠을 잤다. 미리 말해보자. 훼리, 삿포로에서는 캡슐호텔에서 묵었고 이 곳 오타루에서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자게 될 것이고, 그리고 2000엔 짜리 허름한 다다미 방, 하코다테에서 아오모리로 넘어가는 배의 철 침대, 아키타에서는 옥상온천이 있는 호텔에서 지친 몸을 쉬게 된다. 어쩃든, 인생 처음 게스트하우스다. 모리노키 라는 이름의 게스트하우스다.
배가 고팠다. 여기는 게스트하우스. 음식을 싸가지고 와서 요리를 해먹을 수 있는 곳이다. 다시, 몇번이고 말하지만 나는 돈이 없었다. 일본에서 돈이 없을 때 싸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은? 마트에 가서 도시락을 사먹는 거다. 특히 폐점 시간 쯤에 가면 더 싼 도시락을 먹을 수 있다. 마트에 가서 도시락과 맥주를 사들고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서 먹을려니 웬지 쪽이 팔리는 거다. 그래서 좀 더 걷는다. 해가 다 져서 어두컴컴해지는 오타루의 주택가를 외로운 여행자가 걷고 있다. 전망 좋은 곳으로 가서 도시락을 먹기로 한다. 언덕을 올라가다 눈에 미끄러진다.
일본 어디에나 있는 신사다. 신사는 언덕의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차가운 도시락을 차가운 맥주와 먹는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차가운 풍경을 보며. 정말 잊지 못할 풍경이다.
게스트하우스에는 나를 포함해 세 명의 손님이 묵었다. 셋이 모여서 요리를 나눠 먹거나, 맥주를 마시면서 "어디서 오셨어요?" 한국, 부산아세요""아 돌아와요 부산항에 의 부산요?" "네 잘 아시네요" "스고이~~" 같은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규슈에서 온 30살의 남자는 홋카이도의 최북단을 간다고 했다. 다음날, 그는 나에게 인사 없이 가버렸다. 수줍은 많은 일본남자였다. 여자는 나와 같은 또래였는데, 매년 오타루, 그리고 이 게스트하우스에 오는 듯 주인과 안면이 있어보였다. 거실에서 미키 사토시의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를 여자는 보고 있고, 나는 몇 권의 만화책을 들추다가. 노트에 뭔가를 끄적이기 시작한다.
21:21 모리노키
오타루는..
오타루는..
내가 생각한 오타루와 실제의 오타루는
꽤.
다름.
오타루는 미나토마치이면서 자본의 냄새가 무척 풍기는 곳. 유리 공예든 오르곡이든 내 눈엔 다 돈지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오타루의 밤 풍경을 바라보며 비 내리는 신사에서 먹은 벤또와 맥주 한 캔은 잊지 못 할 추억이 될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크리스마스 이브구나. 오늘 밤이 끝나면 크리스마스 분위기도 끝나겠지.
오타루에는 참 연인 관광객이 많았다. 게다가 크리스마스 이브니까 좀 그랬다. 혼자임을 다시 한 번 절감했고. 하지만 내가 생각해야만 할 것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 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세계는 무엇인가? 나는 이 세계에서 무엇을 해야 만 할 것인가?
꽤 붐빌거라 예상했고 새로운 만남이 있을거라고 생각했지만 숙박객은 나를 포함 단 세명. 세명 모두 상당히 촌스럽다.피곤하다. 오늘 참 많이 걸었다. 그리고 한국 돌아가기전 다시 한 번 여행을 하자고 생각한다. 진득하게 2주정도 천천히. 교토에 며칠 묵어서 교토의 구석구석을 보자. 돈은 있을까? 당장 지금 여행하는데도 돈이 없어 죽겠는데 흐흐.
그것보다
나는 왜 여행하고 있지?
사진찍기 위해?
누구에게 갔다 왔다고 뽐내기 위해?
다시는 일본에 안올 것 같으니까?
젊은때 여행이 의무라서?
알수없다. 알수없어.
지난 1년을 돌아보며 나는 조금 성장하기라도 한 것인가. 나도 몰랐고 잠시 우울한 기분에 빠진 적도 있었다. 나에게도 심각한 우울 증세가 있음을 알았고.. 그 우울의 정체는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 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현실과의 괴리를 메워보려는 정신적 노력인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두 번다시 지금 1년을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고. 평생 재산이 될건지, 아니면 또 다른 트라우마로 남을지는 조금은 더 지켜볼 일이다. 잘 살았나? 잘 살고 있나? 잘 살것인가?
외롭고, 우울했고, 지지리 궁상이었다.
'여행노트 > 일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규슈관광열차여행기] 1. 쯔바메를 타고 쿠마몬의 고장 쿠마모토로 (0) 2015.08.17 [규슈관광열차여행기] 0. 반년만의 후쿠오카 (0) 2015.08.16 한신 고시엔 구장 阪神甲子園球場 (0) 2014.10.12 일본 간사이의 초록 파랑 빨강 (2) 2014.10.07 2008년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 그리고 마쓰모토, 나가노 (2) 2014.09.30